일전에도 여러번 폭스바겐 그룹의 위기에 언급한 바 있습니다.
연간 900만 대의 자동차를 생산하는 세계 2위 자동차 기업으로, 최근 독일 경제에서 큰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특히, 폭스바겐이 처음으로 독일 내 공장을 폐쇄하겠다는 발표는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폭스바겐이 전기차 시장에서의 경쟁력 부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폭스바겐은 전기차 시장에서 길을 잃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전기차 스타트업 리비안과의 합작을 통해 반전의 카드를 꺼내들었습니다. 리비안과의 협력을 통해 폭스바겐은 뒤처진 소프트웨어 기술력을 만회하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습니다. 이 파격적인 행보가 폭스바겐을 구할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독일 경제에선 상징적인 사건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폭스바겐은 현재 비상 경영을 선언하고, 자동차 판매가 줄어들면서 영업이익이 급감하고 있습니다. 2023년 1~3분기 영업이익률은 고작 2%에 불과하며, 1937년 설립 이후 처음으로 독일 내 10개 공장 중 최소 3곳을 폐쇄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의 주요 원인은 그동안 폭스바겐을 먹여 살려온 가장 큰 시장인 중국에서의 판매 급감입니다. 중국에서는 전기차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가 대세인 반면, 폭스바겐은 여전히 내연기관차 중심의 제품 라인업을 유지하고 있어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폭스바겐은 지난 6월 리비안과의 합작에 50억 달러(약 7조 원)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업계에서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두 회사가 서로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윈윈'의 기회로 평가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2일 폭스바겐은 리비안과의 합작회사를 공식 발표하며, 총 투자금이 58억 달러(약 8조1500억 원)로 늘어났습니다. 합작회사의 CEO는 리비안의 최고소프트웨어책임자(CSO)와 폭스바겐의 최고기술책임자(CTO)가 공동으로 맡게 되며, 양사의 엔지니어 1000명으로 구성된 이 합작사는 전기차 컴퓨터 시스템과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예정입니다. 리비안은 2026년, 폭스바겐은 2027년에 이 기술을 탑재한 전기차를 출시할 계획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이 거래는 리비안에 매우 유리한 조건이지만, 이는 폭스바겐에게 절실한 선택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폭스바겐은 전기차에서의 소프트웨어 기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리비안의 기술력에 의존하기로 한 것입니다. 리비안은 그동안 전기 SUV와 픽업트럭으로 호평을 받았지만, 연간 생산량이 고작 5만7000대에 불과해 심각한 적자에 빠져 있었습니다. 따라서 폭스바겐의 투자는 리비안에게는 단비 같은 지원이 될 것입니다.
폭스바겐의 전기차 소프트웨어는 과거 여러 차례 문제를 겪어왔습니다. 2019년 출시된 순수 전기차 ID.3는 소프트웨어 오류로 인해 소비자에게 큰 실망을 안겼으며, 터치스크린이 자주 먹통이 되거나, 잘못된 경고음이 울리는 등의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가 불가능하다는 점도 소비자들에게 큰 실망을 안겼습니다. 반면, 테슬라는 2012년부터 무선 업데이트를 제공하여 사용자 편의를 높였습니다.
이후 2021년 출시된 전기 SUV ID.4는 이전 모델보다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소프트웨어 문제로 소비자 불만이 많았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폭스바겐 그룹의 프리미엄 브랜드인 아우디와 포르쉐의 전기차 신모델 출시에도 영향을 미쳐, 여러 모델의 출시가 3년이나 지연되는 사태를 초래했습니다.
폭스바겐은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고, 2020년에는 카리아드라는 소프트웨어 자회사를 설립하여 각 브랜드에 흩어져 있던 엔지니어들을 모았습니다. 그룹 CEO 허버트 디스는 소프트웨어 중심의 모빌리티 기업으로 변신하겠다고 선언하며, 카리아드를 '선도적인 소프트웨어 회사'로 키우기 위해 디지털 전문가 직원을 1만 명으로 늘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현재 카리아드는 그룹 내부에서 골칫거리로 전락했습니다. 폭스바겐이 카리아드에 투자한 금액은 무려 120억 유로(약 17조8000억 원)에 달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소프트웨어 개발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와 관련해 폭스바겐의 내부 관료주의가 큰 걸림돌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전 카리아드 직원은 "카리아드에는 뛰어난 엔지니어들이 있지만, 그들은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이는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인 문제"라고 평가했습니다. 내부의 관료주의와 비효율성은 소프트웨어 개발에 큰 장애물이 되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은 폭스바겐이 소프트웨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설립한 카리아드와 같은 별도 회사에서도 자율성을 부여하지 못하는 이유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모 경제 잡지 분석에 따르면, 폭스바겐이 오래된 기계공학적 구조에 디지털 기술을 통합하려고 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들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테슬라가 소프트웨어를 '살아있는 시스템'으로 보고 접근하는 것과는 달리, 폭스바겐은 하드웨어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거의 성공 공식에 갇힌 사고방식이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응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폭스바겐 그룹은 리비안과의 합작을 통해 자체 소프트웨어 개발을 포기한 상황이며, 카리아드는 해체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폭스바겐과 리비안의 협력이 얼마나 성공적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지만, 과거 독일 자동차 제조사들이 외부 기업과의 통합에 실패한 사례가 많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존재합니다. 다임러와 크라이슬러의 합병 실패나 폭스바겐과 스즈키의 복잡한 관계 등은 이러한 우려를 더욱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현재 리비안의 최고경영자인 RJ 스카린지는 폭스바겐이 리비안의 "빠르고 민첩하며 관료적이지 않은" 업무문화를 합작법인에서도 유지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러한 문화적 차이가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이런 판단이 지극히 독일스러운 결정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안일한 발상이며, 이는 결국 리비안을 제 2의 카리아드로 만들어 버리지 않을까 하는 부정적 예측을 내놓기도 합니다. 과연 과거의 실수를 제대로 인지하고 폭스바겐이 리비안과의 협력을 통해 전기차 시장에서 다시 강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독일 경제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앞으로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