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는 공공 부분이 굉장히 많은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국가가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그런 인식이 굉장히 강합니다. 통계를 보면, 전체 일자리 중에서 공공 부분의 비율이 프랑스가 21% 정도 되고요, 미국은 한 15% 정도 됩니다. 이게 6% 포인트 차이니까 엄청 크게 와닿지 않을 수도 있는데, 일자리 숫자로 치면 수백만 개 차이거든요.
그런데 민간 부분이 굉장히 위축돼 있고 공공 부분이 크면 민간의 활력이 줄어들고, 공무원이 많으면 규제가 많이 늘어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전체 국민 중에 공무원이 꽤 많이 늘었다고 해도 2.3%에 불과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점에서 봤을 때 굉장히 사이가 둔탁하고 천천히 움직인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공공부문이 비대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식민 통치와 관련이 있습니다. 옛날에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나라들이 거대한 제국을 건설할 때 여러 나라들을 거느리고 제국주의에 빠져 있을 때, 국가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인력들이 굉장히 많이 필요했습니다. 지금 그 잔재가 많이 남아 있는 거라고 볼 수 있겠지요.
이 맥락에서 교육 시스템이 이 잔재를 토대로 세워졌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영국의 옥스브리지, 프랑스의 상위권 그랑제꼴 같은 경우도 연구 활동이나 혁신을 창조하는 것보다는 그 나라의 지배 엘리트들을 길러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까 사회가 더 움직이는 속도가 느리고, 변화와 혁신을 가져오는 부분이 작습니다.
유럽이 세계를 주름잡았던 것은 왕정에서 벗어나 개인의 권리를 먼저 확립하고, 개인의 이익을 먼저 보호해 주었으며, 대학이라는 고등교육 기관을 유럽에서 먼저 만들어 변화와 혁신을 유도했기 때문입니다. 또 유럽의 교육 시스템은 사회적 연대와 평등을 강조하는 좋은 측면도 있고요. 그런데 혁신을 가져오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하는 부분은 괜히 뒤쳐져 있습니다. 반면 미국에서는 하버드나 아이비 리그에 있는 대학들이 굉장히 혁신을 선도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기술 개발도 많이 이루어지고요.
인재의 이동과 관련하여 웬만한 나라의 고급 인재들이 미국으로 많이 쏠리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것이 개도국 국가 사람들이 미국으로 가는 것이었는데, 요즘은 유럽에서 뛰어난 사람들도 미국으로 갑니다. 유럽 선진국들이 미국에 비해 규제가 좀 많고, 세금도 많이 떼입니다. 그렇다 보니 뛰어난 사람들이 더 많은 부를 차지하고 혁신이 이루어지며 규제 수위가 낮고 세금도 덜 걷혀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미국으로 많이 가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2차 대전 전, 아인슈타인이 미국으로 간 것처럼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인재 유치가 있었는데, 요즘은 고급 인재들이 규제와 관련된 문제로 유럽 밖으로 나가는 데 영향을 줍니다. 예를 들면, 독일을 대표하는 바이오 기업인 바이오엔테크가 있습니다. 바이오엔테크는 코로나 사태 동안 화이자와 코로나 백신을 공동 개발했습니다. 사실 원천 기술은 화이자보다 바이오엔테크가 많이 개발했다고 하죠. 그런데 바이오엔테크는 영구 개발 임상 센터를 영국으로 옮겨버렸습니다. 그 이유는 독일의 굉장히 까다로운 개인정보 보호법에 막혔기 때문입니다.
바이오 관련된 연구를 하려고 하면 개인들의 개인 정보가 필요하게 되는데, 독일의 개인정보법이 워낙 강력하다 보니 여기에 갇히기 싫어서 나가버리는 것입니다. 독일식 규범이 만들어내는 한계가 이런 것입니다. 그러면 독일을 대표하는 바이오 기업이 다른 나라로 간다면, 그만큼 인재가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리콘밸리나 월가에는 독일 사람들, 영국 사람들, 프랑스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바이오엔테크라는 회사는 상장을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증시에 하지 않고 나스닥에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독일 기업들이 유럽에서 빠져나가려는 기류가 있습니다. 그러면 인재가 더 밖으로 나갈 확률이 높아지고, 이런 악순환의 반복으로 어려움이 커지지요.
관습과 규제로 인해 혁신을 상실한 유럽의 교육시스템, 연구기관이 구태를 벗고자 많은 노력을 하려고는 합니다만, 최근 VW사태를 보듯이, 쉽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는 않아보입니다.